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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어휘 산책] '어질다'로 번역되는 賢(현)자의 의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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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앤파트너스
댓글 0건 조회 468회 작성일 22-04-2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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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사람을 가리킬 때 ‘능력 있다’ 또는 ‘현명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賢明’이라는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마음이 어질고 영리하여 사리에 밝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賢자는 ’마음이 어질다’라는 의미이고 明자는 ‘영리하여 사리에 밝다’라는 의미로 풀이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영리하여 사리에 밝다’라는 말은 별도의 풀이가 필요하지 않을 듯하지만 ‘어질다’라는 말은 무언가 설명이 더 필요할 듯하다. 국어사전에는 ‘어질다’를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이 높다.’로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명은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이 높으며 영리하여 사리에 밝다.'라고 풀이할 수 있을 듯하다. 이렇게 풀어 놓고 보면 賢明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賢이라는 한 글자에 이렇게 많은 뜻이 담긴 것은 이 글자가 만들어지고 난 뒤 오랜 기간 동안 또는 넓은 지역에서 사용되면서 여러 의미들이 그 글자에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賢자는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에 처음 등장하는 글자이니 수천 년 전 청동기가 사용될 때에 만들어졌고 한자 문화권 전역을 고려하면 넓은 지역에서 사용된 글자임이 분명하다.

 

賢자가 만들어질 때 처음에 부여된 의미를 추적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글자를 구성하는 요소와 초기 문헌에 보이는 용례들, 글자가 만들어진 시기의 사회 문화적 상황 등을 분석하면 어느 정도는 가능한 일이다. 賢자는 신하나 관리를 의미하는 臣, 반복 또는 중복을 의미하는 又, 재화나 재물을 의미하는 貝로 구성되어 있다. 이로서 추측해 보면 이 글자는 신하 여러 명이 힘을 합쳐야만 얻을 수 있는 재화나 재물 즉 성과와 관련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어》나 《서경》등의 초기 문헌에 賢자는 聖자와 더불어 훌륭하거나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聖은 최고의 이상적인 인간형을, 賢은 그 다음의 이상형을 의미한다. 또 고대 사회에서는 인물에 대해 평가하는 말을 사용할 때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다른 용어를 사용했다. 聖자의 경우 천자들에게만 허용되었고 賢자의 경우는 천자 아래의 지배 계층(제후, 공, 경, 대부)에게만 허용되었다. 이를 종합해 보면 賢자는 천자 아래의 지배 계층 사람들 중 그들의 직무와 관련하여 가장 뛰어난 성과를 거둔 사람이나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 또는 몇 사람의 신하들의 몫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평가 용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왕명에 따라 부역에 동원되어 힘들게 고생하며 멀리 계신 부모님을 걱정하는 어떤 大夫의 탄식을 담고 있는 《시경》의 시 한 구절에서 賢자의 원래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溥天之下 莫非王土

온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곳이 없고

 

率土之濱 莫非王臣

모든 땅 해변까지 왕의 신하 아닌 사람이 없거늘

 

大夫不均 我從事獨賢

대부들이 같지 않아 일 잘한다고 나만 홀로 부리는구나.

 

-《詩經》〈小雅 北山〉


* 이 글에 이어 다음 달에는 ‘일을 잘하는 사람’ 또는 ‘역할 수행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 賢자를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이 높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의 글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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