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어휘 산책] 우리말에 포함된 한자어 단어를 줄여 나갈 수 있는 길 -한자(漢字)의 역사: 갑골문(甲骨文), 금문(金文)…
페이지 정보
본문
갑골문(甲骨文)은 상(商)나라 말기인 기원전 1,200년에서 기원전 1,050년 사이에 사용된 갑골에 기록된 글자이다. 갑골은 거북이의 배 껍질이나 짐승의 뼈로 이를 불로 지져서 갈라진 흔적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데 사용되었다. 점을 친 날짜·점친 사람·점친 내용·점친 결과·결과에 대한 판단 등 일련의 사항을 문자로 간결하게 거북이 배 껍질이나 짐승의 뼈 위에 뾰족한 도구로 새겨놓았다. 현재까지 15만여 편의 갑골이 발견되었고 4,500여 글자가 확인되고 있다. 그중 1,800여 자 정도가 판독되었다. 갑골문은 한자(漢字)의 원형이다.
금문(金文)은 서주(西周) 및 춘추·전국시대인 기원전 11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제작된 청동 솥[鼎]이나 청동 종[鐘] 등 청동 기물에 주조나 새김으로 기록된 글자이다. 주조된 금문은 주로 흙으로 빚은 틀에 새기고 이 틀에 금속을 녹여 부어서 주조했기 때문에 서체가 굵직하여 장중하고 둔중한 느낌을 준다. 갑골문의 글자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고 갑골문에 비해 많은 수량일 뿐 아니라 문맥을 파악할 수 있는 장문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어서 금문은 갑골문의 글자 해독에 많은 도움이 된다. 대표적인 금문 중 하나인 〈모공정(毛公鼎)〉에는 497자가 기록되어 있다.
소전(小篆)은 진(秦)나라 시황(始皇)이 기원전 221년 나머지 여섯 나라를 정복하여 천하를 통일한 뒤 만든 글자이다. 그 뒤 한(漢) 왕조와 당(唐) 왕조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동안 그대로 사용되었다. 통일 전 진(秦)나라의 문자였던 주문[籀文: 주(周)나라 선왕(宣王, 재위 기원전 827년∼기원전 782년)이 태사 주(籀)에게 만들게 한 글자]의 자형을 간략화하여 만들었다. 진시황은 승상 이사(李斯)에게 소전을 만들게 하고, 통일 전에 각 나라에서 사용되던 다양한 형태의 다른 문자[전국문자(戰國文字)]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글자를 간략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형태가 갑골문이나 금문과는 달라진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이후의 예서(隸書)와 해서(楷書)에 비해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갑골문과 금문의 해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예서(隸書)는 전한(前漢, 기원전 202년~기원후 8년) 때 만들어진 글자로 소전의 곡선을 직선화하여 간략한 형태로 만든 것이다. 하급 관리인 예인(隸人)이 행정의 더 나은 효율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후한(後漢, 25년~220년) 때 와서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한자의 글자 형태 변천 역사에서 예서의 등장은 글자의 획기적인 형태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예서는 횡으로는 길고 수직으로는 짧은 장방형 꼴로 글자의 모양을 규격화하였다. 둥근 획을 직선으로 만들고 규격화한 것은 필사에 유리한 점은 있었다. 그러나 지나친 직선화와 규격화로 글자의 모양이 원형과는 많이 달라져 처음 글자인 갑골문의 글자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서(楷書)에서 더 심해졌다. 이런 형태 변형은 그 글자가 가졌던 가장 중요한 원래의 의미를 글자의 형태에서 파악할 수 없게 만들었고 이는 천여 년 이상의 오랜 기간에 걸쳐 그 글자가 갖게 된 여러 의미 사이의 연결 고리를 알 수 없게 하였다.
해서(楷書)는 위진남북조시대(220년~589년)에 만들어진 글자이다. 예서에서 변화하여 그것보다 단정하고 정형화된 형태가 되었다. 해서는 ‘진서(眞書)’ 혹은 ‘정서(正書)’라고도 한다. ‘해서’라는 명칭에는 본보기가 되는 단정한 글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자의 표준이 되는 글자 꼴이다.
21세기의 우리는 한자(漢字)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문자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다. 이는 전통 시대 끝 무렵부터 이어진 우리의 노력의 성과 덕분이다. 그러나 현재 사용되는 우리말 단어 중 57%가 한자어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문자 생활이 한자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또 한자어로 된 우리말 단어의 한국어사전의 풀이에 다시 한자어가 사용되고 결국은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만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전히 한자 문화권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한자를 익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자어의 어미를 정확히 풀이하여 대중에게 제시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우리말 관련 연구자나 한자어의 어미를 좀 더 정확하게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한자(漢字) 또는 한문(漢文)을 학습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표준화된 해서(楷書) 뿐만 아니라 소전과 갑골문에 대한 관심과 연구도 지속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우리말 중 57%를 차지하는 한자어의 의미를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고 이런 성과의 축적은 우리말 속의 한자어 비중을 줄일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