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어휘 산책] 두려워하고 있음을 상대에게 보이는 것 의미하는 글자: ‘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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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경)은 우리말 ‘공경하다’나 ‘삼가다’로 풀이되는 글자이다.《표준국어대사전》에 ‘공경하다’는 ‘공손히 받들어 모시다’로, ‘삼가다’는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로 풀이되어 있다. 이는 연장자나 상급자에 대한 마음과 그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과 관련된 의미로 볼 수 있다.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는 것은 공손히 받들어 모시려는 뜻을 몸짓이나 언행으로 상대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敬(경)에 대한 우리말 해석은 글자의 의미를 비교적 잘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敬(경)의 초기 글자 모양은 이와는 다른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는 여지를 갖고 있다.
敬(경)자는 금문(金文)에 처음 보인다. 입[구口] 모양과 머리털이 바짝 선 상태의 긴장된 모습으로 서 있는 사람[인人], 손에 회초리를 들고 있는 형상[복攴]을 구성 요소로 한다. 구(口)은 보통 입이나 소리를 의미하는 글자이다. 특히 소리를 의미할 때 이 글자는 구호, 구령, 고함, 명령, 지시 등의 의미를 갖는다. 敬(경)의 글자 구성 요소로 사용된 구(口)도 고함이나 명령, 지시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손에 회초리를 들고 있는 모습은 몽둥이질하거나 체벌한다는 의미이다. 글자의 구성 요소로만 보면 敬(경)의 의미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고함을 치거나 소리를 지르는 존재와 막대기를 들고 체벌하려는 사람 사이에서 두려워 머리털이 바짝 선 상태가 된 사람을 형상화한 것으로 ‘두려워하는 사람’, 또는 ‘두려워함을 드러내는 사람의 모습’을 의미한다. 2) 명령하는 존재와 명령에 따르기를 재촉하기 위해 또는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 처벌하기 위해 몽둥이를 든 사람 사이에서 두려워 긴장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형상화한 것으로, 마찬가지로 ‘두려워하는 사람’, 또는 ‘두려워함을 드러내는 사람의 모습’을 의미한다. 글자의 구성 요소는 셋이지만 [구口]와 [복攴]은 상황을 설정하는 역할이고 두려움에 머리털이 바짝 선 상태가 된 사람[인人]의 모습이 이 글자의 본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경(敬) 즉,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대상은 원래 ‘하늘[天]’과 ‘군주[君]’였다. 한자문화권의 전통사회에서 하늘[天]은 모든 명령과 처벌의 근원이다. 한자문화권의 초기 군주는 모두 무당왕이었다. 군주는 하늘의 명령을 내려 받아 이를 신하와 백성에게 내리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자신의 권위와 지위를 유지하였다. 문명 초기 인간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은 자연[天]이 만들어내는 재해와 재앙이었다. 이에 따라 무당왕은 이 자연의 재해와 재앙을 이용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였다. 무당왕은 자신이 독점한 하늘의 명령을 근거로 사람들의 복종을 이끌어 내었고 사람들은 하늘과 무당왕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재해와 재앙을 피해가려 하였다. 이런 복종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글자가 敬(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