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휘산책] 인간 생존과 발전의 근본적 능력을 의미하는 글자: 앎[知] -知覺(지각), 知識(지식), 知·智慧(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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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의미는 글자의 모양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글자의 모양이 사물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몇 가지 구성 요소가 결합된 글자의 경우 결합 요소의 상호 관계에서 그 의미를 유추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글자들은 글자의 모양에서 그 의미를 추론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갑골문이나 전서체의 글자에 대한 풀이에는 많은 이견이나 억측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알다’ 또는 ‘앎’을 의미하는 글자 知의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知는 소전(小篆)에서 처음 보인다. 矢와 口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글자이다. 矢[화살]과 口[입]은 둘 다 갑골문에 있는 글자이다. 화살과 입에서 ‘알다’ 또는 ‘앎’이라는 의미를 추론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矢는 화살을 의미하고 그 모양이나 기능에서 곧다, 정직하다, 빠르다 등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口는 입이고 소리 내다, 입구, 관문, 구멍, 사람 등의 의미도 갖는다. 矢와 口 두 글자의 의미에서 知의 원래 의미를 추론해 보고 知의 여러 의미들과의 연관성을 찾아보도록 하자.
《설문해자》에서는 知에 대해 “대체로 이치를 빠르게 아는 것이 화살이 빠른 것과 같다[凡知理之速 如矢之疾也]”라고 풀이하고 있다. 비록 설명은 하고 있지만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고 바로 납득되지도 않는다. 《설문해자》는 후한(後漢) 때의 학자 허신(許愼)이 서기 121년에 완성한 자전(字典)이다. 또 최초의 자전으로 알려져 있다. 진시황의 명령으로 이사(李斯)가 소전을 만들었을 때와는 300여 년의 간격이 있고 갑골문이 사용되던 은나라 시기부터는 적어도 1000년 이상 떨어진 때에 만들어진 책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허신의 글자 풀이가 글자의 원래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知의 《네이버한자사전》에서의 풀이는 1)알다, 2)알리다, 3)주관하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矢[화살, 곧다, 빠르다, 정직하다]와 口[입, 입구, 관문, 구멍, 소리 내다]에서 추론해 낼 수 있는 의미군은 a)화살과 소리 내다의 결합, b)빠르다와 입구 또는 관문의 결합, c)빠르다와 소리 내다의 결합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a)의 경우는 화살을 쏘아 아군에게 위험을 알리거나 신호를 알리는 명적(鳴鏑)이나 효시(嚆矢)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知의 의미는 [소리를 내는 화살을 쏘아] ‘알리다’였을 것이다. b)의 경우는 [화살이 날아가는 것과 같이] ‘빠르게 입구나 관문에 도착하다’였을 것이다. c)의 경우는 빠르게 소리 내거나 지시하여 상황에 맞게 ‘무리를 이끌다’이다. a)는 知의 풀이 중 2)알리다로 이어지고 c)의 경우는 3)주관하다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네이버한자사전》에서의 知의 풀이 1)알다는 어떤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일까? 한자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상적인 인간형인 군자(君子)에게는 인(仁: 공동체 구성원의 연대의 능력)과 함께 지(知)의 덕목을 갖출 것을 요구하였다. 이 지(知)는 감각에 수용된 내용을 구분하고 분류하는 능력[知覺], 학습과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내용[知識], 지각이나 지식으로 획득한 것들 사이의 드러나지 않는 관계를 파악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知慧]을 포괄하는 의미를 갖는다. 矢[화살, 곧다, 빠르다, 정직하다]와 口[입, 입구, 관문, 구멍, 소리 내다]에서 추론해 낸 의미군 중 b)빠르다와 입구나 관문의 결합에서 추론해낸 [화살이 날아가는 것과 같이] ‘빠르게 입구나 관문에 도착하다’는 의미는 군자의 덕목으로서의 지(知)에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