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휘산책] ‘嚴父慈母(엄부자모)’: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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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적 특성을 담고 있는 말
과거 전통시대 부모의 자녀에 대한 대우·역할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말이 ‘엄부자모(嚴父慈母)’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엄부자모’의 의미가 이 용어의 원래 의미를 잘 담아내고 있는가를 검토해 보려 한다.
‘엄부자모(嚴父慈母)’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엄격한 아버지와 사랑이 깊은 어머니라는 뜻으로, 아버지는 자식들을 엄격히 다루어야 하고 어머니는 자식들을 깊은 사랑으로 보살펴야 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경우 ‘엄하다’와 ‘사랑이 깊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역할이나 대우의 방식인 ‘엄격하게 다루어야 한다’와 ‘깊은 사랑으로 보살펴야 한다’를 각각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엄부자모(嚴父慈母)’의 의미이다.
사전의 ‘엄부자모(嚴父慈母)’에 대한 풀이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자. 1) ‘엄격한 아버지와 사랑이 깊은 어머니’, 2) ‘아버지는 자식들을 엄격히 다루어야 하고 어머니는 자식들을 깊은 사랑으로 보살펴야 한다’이다. 1)은 한자어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고, 2)는 한자어를 의역(意譯)한 것이다. 의역이란 하나하나의 글자나 단어, 구절에 구애되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리는 번역이다. 의역이 제대로 된 번역이 되기 위해서는 원문이 가진 역사·문화 속에서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엄부자모(嚴父慈母)’에 대한 의역 즉, ‘아버지는 자식들을 엄격히 다루어야 하고 어머니는 자식들을 깊은 사랑으로 보살펴야 한다’라는 풀이는 ‘엄부자모’의 역사·문화적 맥락을 잘 담고 있는 것일까?
한자문화권의 전통사회는 가부장중심과 권위주의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가부장 중심의 위계질서와 권위주의의 계층질서를 특징으로 하는 과거의 전통사회를 굳건히 유지시켜주었던 기본 토대는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대우 즉, 효(孝) 이념이다. 효 이념은 나이 어린 사람의 연장자에 대한 대우, 신하의 군주에 대한 대우, 아래 사람의 윗사람에 대한 대우, 여성의 남성에 대한 대우 등으로 확장되며 전통사회의 기본 골격을 형성하였다. 전통사회에서는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군주를 신하가 거부하거나 바꿔버릴 수 있었지만 아버지가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들이 아버지를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효 이념은 절대적인 가치를 가졌고 효 이념이 절대적 가치를 가졌다는 말은 아버지의 권위가 아들에게는 절대적이라는 말과 동일하다. 이런 사회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아버지는 아들에게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대상이었고 어떤 상황에서든 절대적 권위를 가진 존재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에서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의식적으로나 의도적으로 아들을 엄격하게 대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엄부자모(嚴父慈母)’ 즉,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는 마치 ‘푸른 하늘’이나 ‘무서운 호랑이’와 같이 그 존재적 특성을 표현한 용어로 볼 수 있다. ‘엄함’과 ‘자애로움’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녀들을 대하는 또는 대해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통사회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자녀가 느끼는 그 존재적 위상을 표현한 말로 보는 것이 좀 더 이 용어의 본래 의미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