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한 1500억 사라져" 지역주택조합 '사기'에 수백명 눈물

정한결 기자 2021. 4. 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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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사진=뉴스1

"34평형에 6억9000만원"

직장인 A씨(52)는 2016년 서울의 한 지역주택조합(지주택) 광고를 보고 혹했다. 넓고 좋은 새 아파트가 평당 2000만원. 배우자, 자녀 2명과 함께 17년 된 아파트 25평 한 채에 살고 있는 그에게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평생 저축한 돈을 빼고, 1억원을 대출했다. '새 집 마련'의 꿈을 갖고 조합에 가입했지만 그 기대는 곧 박살났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착공조차 못했다. 업무를 맡긴 시행사는 매번 추가로 돈을 내라고 요구했고, 총 1500억원을 쥐고도 대상 부지의 절반도 확보 못했다. 조합계좌에 남은 돈은 단 1000만원. 그를 비롯한 500여명의 조합원들이 희망을 담아 투자한 돈이 사라졌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수억원을 투자한 지주택이 헛된 희망에 그치고 있다. 조합원들이 조합을 '분양'으로 여기면서 방치하는 가운데 업무대행사가 조합 수뇌부와 결탁해 자금을 횡령하는 등 시공이 지연되면서다. 업계 관계자들은 "수도권 지주택의 경우 95%가 실패한다"면서 "사기꾼들을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없기에 조합원들이 신경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라진 1500억원…대행사가 '꿀꺽'
A씨는 조합에 가입하고 2년동안 신경쓰지 않았다. 기다리면 알아서 아파트가 지어지고 분양 받을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상함을 깨달은 시점은 B업무대행사가 업무대행비 100억원 전액을 사전 지불하라고 요구한 2018년. 관례대로라면 착공 전까지 통상 5~6단계로 나뉜 업무가 단계별로 성공할 때 보상을 줘야했다. 그러나 해당 안건은 조합추진위원회(추진위)에서 이상하게 쉽사리 통과됐고, A씨 등의 항의는 묵살됐다.

이상한 대행비 다음에는 이상한 땅값을 내야했다. 당초 B사는 조합원 자금 320억원으로 핵심 부지를 모두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확인 결과 해당 땅은 조합 명의가 아닌 처음 보는 기업인 C사 앞으로 돼있었다. 조합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B사 대표는 자신이 C사의 최대주주라며 부지가 사실상 조합 소유라고 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C사에게 92억원을 더 지불해야 했다. B사는 계약금 30억을 납입하고 잔금으로 나머지를 지불하기로 C사와의 계약을 체결했는데, C사는 "잔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면서 계약 파기를 빌미로 92억원을 더 달라고 했다.

토지를 구매하라고 B사에 일을 맡겼지만 B사 대표는 자신이 최대주주인 C사에 외주를 줬고, 그 비용마저 비정상적인 계약을 통해 조합에 손해를 끼친 셈이다. 항의를 했지만 "B사와 C사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추진위는 이번에도 안건을 통과시켰다.

결국 조합원들은 칼을 빼어 들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자체 조사에 나선 결과 분납금 1000억원에 대출 550억원, 1500억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됐지만 통장 잔고에는 단 1000만원만 남아 있었다.

A씨는 "상식적으로 믿기도 어려운 일들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당초 토지비로 2140억이 책정됐지만 예산의 70%를 쥐고도 토지의 40%만 구매했다. 평당 2000만원이라는 광고도 허위로 판정났다. 2016년 당시 기준으로 평당 2500만원이 필요했다.

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A씨 등은 사라진 돈 수백억원을 추진위와 업무대행사들이 결탁해 갈취했다고 본다. 그들은 이 주택조합이 처음부터 '짜고 친 기획사기'라고 주장한다. 조합을 시작한 조합원장과 추진위 관계자들은 B 업무대행사 대표와 지인 관계였으며, 조합 업무 일감의 절반 이상을 B사와 B사가 세운 유령회사들에게 몰아줬다는 것이다.

A씨 등에 따르면 해당 조합이 업무를 맡긴 C사 외 D사, E사 등도 구성원이 유사하고 대표만 바뀌는 유령회사였다. B사는 자신의 업무를 유령회사에 하청했고, 그 비용은 이미 B사 업무대행비로 사전 결제했음에도 추가비용이라며 조합에 다시 청구했다. 이와 관련 B사 측은 "전문가들에게 일감을 주니까 (같은 사람들이) 맡게 됐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조합원들은 B사와 조합장을 해임하고 형사고소에 나섰다. 하지만 설령 처벌 된다해도 전망은 밝지 않다. 탈퇴를 원하는 조합원들도 100명이 넘는데 통장에 잔고는 없다. 분납금을 새로 모으려 해도 5년동안 사업이 표류하면서 땅값은 평당 3700만원으로 불었다.
"지역주택조합은 분양이 아니다"
지주택과 업무대행사를 둘러싼 비리는 비단 A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행사의 비리로 10년 넘도록 표류하는 사업도 다수다. 지난해에는 서울 중랑구의 한 지주택에서 조합원들을 속여 수십억 원을 빼돌린 업무대행사 대표 F씨가 1심에서 징역 11년과 88억9200만원의 추징을 선고받았다.

F씨는 토지사용승낙률이 40%를 밑돌았지만 조합 설립인가 조건인 80% 이상을 갖췄다고 속여 조합원을 모집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조합자금 약 90억원을 빼돌린 혐의도 받는다. 횡령한 자금은 선물옵션 투자, 실내경마 , 유흥비 등으로 탕진했다.

그가 일으킨 피해액만 1인 평균 5000만원이 넘지만 대부분 회복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조합은 10년 가까이 표류하면서 조합원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은 철저히 무너졌다.

F씨와 A씨의 사례처럼 허위 광고가 판을 치고 업무대행사가 사기를 기획하지만 이를 타개할 뾰족한 수가 없다. 사실상 제재가 전무한 가운데 A씨처럼 직접 행동에 나서는 방법이 최선이다.

부동산컨설팅업체 가이아의 김경옥 대표는 "지역주택조합은 분양이 아니다"면서 "조합원 스스로가 이 사업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땅값이 비교적 싼 지방은 가능할지 몰라도 서울, 부산 등 대도시권에서 지역주택조합의 95%가 실패한다"면서 "너무 값싼 가격에 비싼 지역 아파트를 구할 수 있다면 해당 광고를 믿지 않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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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결 기자 han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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